헨릭 입센 - 유령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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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개발자 작성일19-11-20 11:39 조회3,626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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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 Henrik Ibsen ]

헨릭 입센 (Henrik Ibsen, 1828~1906) 노르웨이 남부 항구도시 시엔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

여덟 살 때 집이 파산하여 열다섯 살까지 약방의 도제로 일했다.

​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수험준비를 하는 한편, 신문에 만화와 시를 기고했다.

​희곡 『카틸리나』(1848)를 출판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그 후 『전사의 무덤』(1850)이 극장에 채택되어 상연되자

대학 진학을 단념하고 작가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.

​1851년 국민국장 전속작가 겸 무대감독으로 초청되어 이때 무대 기교를 연구한 것이 훗날 극작가로 대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.

​1857년에 노르웨이 극장의 지배인으로 직장을 옮긴 뒤 최초의 현대극 『사랑의 희극』(1866)과 『왕위를 노리는 자』를 발표했으나

인정받지 못하고 이탈리아로 가서 그리스 로마의 고미술을 접하게 되었다.

여기에서 목사 브랑을 주인공으로 한 대작 『브랑』(1866)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다.

​이후 『페르 귄트』(1867), 『황제와 갈릴레아 사람』(1873) 등에서 사상적 입장을 확고하게 굳혔다.

​이어 사회극 『사회의 기둥』(1877), 『인형의 집』(1879) 등을 발표했다. 

입센은 《유령 Gengangere》(1881) 《민중의 적 En Folkefiende》(1882) 《들오리 Vildanden》(1884)

​《로스메르 저택 Rosmersholm》(1886) 《바다에서 온 부인 Fruen fra Havet》(1888) 《헤다 가블레르 Hedda Gabler》(1890)에

이르는 사이에, 한 작품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세상 사람들을 열광시켰다.

​해외에서 체재한 후 귀국한 그는,

​《건축사 솔네스 Bygmester Solnes》(1892)

​《작은 아이욜프 Lille Eyolf》 《보르크만 John Gabriel Borkman》 《우리들 죽은 사람이 눈뜰 때》(1898) 등의 작품을 썼다.

​그는 힘차고 응집된 사상과 작품으로 근대극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, 근대 사상과 여성해방 운동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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